데리다와 비트겐슈타인

두 현대 철학자의 사상에 대한 적확한 분석 시도

'데리다와 비트겐슈타인' - 뉴텐 가버·이승종 지음, 이승종·조성우 옮김, 민음사 펴냄

데리다와 비트겐슈타인은 각기 현대 철학사상의 지형을 규정짓는데 큰 역할을 한 문제의 인물들이다. 비트겐슈타인은 현대 언어철학의, 그리고 데리다는 해체주의의 원조로 간주된다. 비트겐슈타인의 대표작인 초기의 『논리철학 논고』, 후기의 『철학적 탐구』는 엄청난 철학적 영향력을 행사했고 이른바 ‘비트겐슈타인 산업’을 출범시켜 천문학적이라고 할 수 있는 참고문헌을 양산케 했다. 현재도 정력적 활동을 펴고 있는 ‘스타 철학자’ 데리다는 40여권의 저서를 펴냈고 강단철학계의 차가운 시선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적인 명성을 누리면서 ‘데리다 산업’의 대부로서 기능한다.

비트겐슈타인과 데리다는 독특하고 형식 파괴적이며, 비의적(非意的)이기까지 한 철학관과 서술 양식때문에 끊임없는 논란의 대상이 되어왔다. 따라서 그들을 제대로 이해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작업일 수밖에 없다. 비트겐슈타인은 『논리철학 논고』의 서문을 써준 스승 러셀조차 자신의 사상을 오해하고 있다고 불평했으며, 데리다는 모든 이해는 동시에 오해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투명한 이해에 대한 기대가 헛된 것임을 자신의 글쓰기로 보여준다. 사정이 이럴진대, 『데리다와 비트겐슈타인』의 저자인 가버와 이승종 교수(인문학부·언어 철학)가 고백한 것처럼, “그 둘 모두에 대해 무언가 주장하려는 글을 쓰려는 시도가 무모 한 일”이 될 가능성이 상존한다. 두 사상가를 비교하는 작업을 전문적 철학자들이 내켜하 지 않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가버와 이승종 교수의 이러한 자의식은, 역설적으로 『데리다와 비트겐슈타인』을 탄탄하고 치밀한 작품으로 구체화시키는데 큰 역 할을 하였다.

이른바 언어적 전환이 시대의 화두가 된 현대 철학의 지평에서 비트겐슈타인과 데리다는 언 어의 문제를 매개로 해서 의미, 은유, 비사실적 담론의 중요성을 강조함으로써 데카르트적 전통으로부터 발원한 인식론의 헤게모니를 비판한다. 둘 다 과학주의, 체계적 철학과 총체성 개념, 그리고 형이상학 일반의 수립 가능성을 거부한다. 『데리다와 비트겐슈타인』은 출발 선 상에서 두 철학자가 갖는 이러한 공통점을 배경으로 해서 둘 사이의 차이, 또는 상호보 완성을 은유, 문법, 논리와 수사학, 문체, 철학관 등을 중심으로 해서 상세하게 논구하고 있 다.

가버와 이승종 교수가 지적하는 것처럼 포괄적 총체성, 수학적 이성, 계몽의 낙관론을 경계 하는 점에 있어 비트겐슈타인과 데리다는 니체의 문제의식을 계승한다. 니체가 그렇듯이 그 들의 경우에도 “긍정하는 것 보다는 반대하는 것이 무엇인지가 더 분명하다.” 그러나 둘 사이에는 결정적 차이가 엄존한다.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을 재구성하려 하며, 데리다는 철학 의 종언을 역설한다는 것이다. 둘 다 언어를 매개로 삼지만, 비트겐슈타인의 논점은 전통적 인 철학적 주요 문제들을 우리의 생활세계로부터 출발해서 재조명 하는데 비해, 데리다는 삶과 세계를 텍스트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뜨려버린다.

『데리다와 비트겐슈타인』의 저자들은 데리다의 중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올바른 출발점 에 서 있다”는 이유로 비트겐슈타인에 대한 친화성을 분명히 한다. 이러한 가치판단은 영 미철학의 배경을 갖는 저자들로서는 쉽지 않았을, 프랑스의 독특한 지성사적 풍경과 데리다 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기반으로해서 내려진 것이기 때문에 설득력 있게 들린다. 비록 데리 다가 최근에 해체주의의 실천적·정치철학적 함축에 관해 활발한 발언을 시도하지만 그의 텍스트주의는 근원적으로 그러한 작업을 뒷받침해주지 않는다는 사실은, 가버와 이승종 교 수의 결론이 정곡을 찌르는 것임을 예증한다.

『데리다와 비트겐슈타인』은 난해한 두 사상가에 대한 균형잡힌 독해를 통해 현대 철학사 상의 주요 쟁점들을 치밀하게 짚어준다. 그런 의미에서 이 저서는 일급의 주석서이며, 철학 계의 한 성과로 평가되어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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