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쟁으로 본 현대철학(괴델과 비트겐슈타인)

인위적 수리철학의 신봉 거부하는 '철학적' 메시지

괴델과 비트겐슈타인은 의심의 여지없이 20세기를 대표하는 사상가들이다. 그러나 두 거장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 학자들은 비트겐슈타인이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의 내용과 의의를 이 해 못한 것으로 평가해왔다. 사실 이는 괴델 자신의 견해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는 괴델에 대한 비트겐슈타인의 논의의 진의를 깊이 읽어내지 못한데서 비롯된 피상적 견해이다. 이 글에서 우리는 비트겐슈타인을 다시 읽음으로써 그에 대한 기존의 평가를 시정하고자 한다. 현대는 과학의 시대이다. 현대의 과학주의자들은 철학의 문제가 과학에 의해, 혹은 과학의 언어학인 수학에 의해 해결될 수 있는 것으로 간주한다. 그들은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를 그 대표적 예로 꼽고 있다. 그들은 괴델의 정리가 수리철학에서 플라톤주의와 형식주의 논쟁에 종지부를 찍은 것으로 간주한다. 비트겐슈타인은 과학의 시대인 이 세기를 암흑기로 보았다. 과학의 시대의 어두움은 모든 것을 과학으로 귀착시키는 환원주의적 사유 방식에 있다. 환 원은 차이를 말소하는 작업이다. 비트겐슈타인은 말소된 차이를 복원하는 것을 자신의 철학 적 사명으로 삼았다. 나는 그의 이러한 입장을 분리주의라고 부르고자 한다. 그는 철학을 과 학, 수학, 심리학 등 여타의 학문으로부터 분리시키려 한다.

불행하게도 비트겐슈타인의 분리주의는 비트겐슈타인 학자들에게조차도 잘못 이해되어 왔으 며 또한 그의 가족 유사 개념과 상충되는 것처럼 폄하되어 왔다. 분리주의에 대한 오해는 언어 게임 개념에 대한 오해와 맞물려 있다. 따라서 분리주의를 올바로 이해하려면 언어 게 임을 올바로 이해해야 한다. 비트겐슈타인은 ‘언어와 그 언어에 얽힌 행위로 구성된 전 체’를 언어 게임으로 정의한다. 그는 “‘언어 게임’이라는 용어는 언어를 말하는 것이 행위의 일부, 혹은 삶의 형식의 일부라는 사실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 의도된 것”이라고 말 하고 있다. 게임들이 서로 가족 유사성을 갖고 있듯이 이들 언어 게임들은 서로 가족 유사 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나는 언어 게임에 대한 비트겐슈타인의 이러한 입장을 연결주의라고 부르고자 한다.

비트겐슈타인에 있어서 분리주의와 연결주의는 어떻게 양립할 수 있는가? 우리는 분리주의 가 학문이나 담론들 간의 분리를 지시하는데 반해 연결주의는 언어 게임들 간의 연결을 지 시하고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수학은 집합론, 수론, 군론 등의 각론과 계산하 기, 증명하기, 규칙 따르기 등과 같은 언어 게임들이 씨줄과 날줄로 얽힌 직물이다. 수학이 다양한 각론들과 언어 게임들의 얽힘이라면 그 구성 요소에는 차이성과 유사성이 함께 혼재 해 있음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때로는 각론들 사이의 차이성이 환원에 의해 말소될 수도 있다. 그러나 수학의 모든 분야가 하나의 체계(예컨대 화이트헤드/러셀 체계나 집합론 체계) 로 환원된다는 것은 수학에 관련된 모든 언어 게임이 하나의 언어 게임으로 환원되는 것만 큼이나 비현실적인 이상이다. 그러한 환원이 이루어진다 해도 그것은 환원되는 내용을 보존 하는 차원의 번역이 아니라 그 의미를 새로이 규정하는 재해석이 될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았을 때 수학을 하나의 통일된 담론으로 간주하고 그 담론의 토대로서 메타 수학이나 수리논리학이라는 토대 담론을 각각 상정하는 힐버트의 형식주의와 화이트헤 드/러셀, 프레게의 논리주의는 수학의 실제를 외면한 매우 인위적인 수리철학이다. 비트겐슈 타인에 의하면 수학의 토대는 수학기초론이나 수리철학과 같은 이론에 의해 설명되는 것이 아니라 수학의 실제를 이루는 계산하기, 증명하기, 규칙 따르기 등과 같은 언어 게임에 대한 기술(記述)에서 찾아진다. 나는 수학의 기초에 대한 비트겐슈타인의 이러한 입장을 ‘반정초 주의’라고 부르고자 한다.

비트겐슈타인에 의하면 언어의 의미는 그 언어가 사용되는 문맥에 의해 주어진다. 수학에 있어서 그 문맥은 그 언어가 위치한 좌표계, 즉 체계에 해당하며 체계를 구성하는 적(適)형 식은 그 체계 안에서의 쓰임에 의해서 제 역할을 할당받는다. 이처럼 수학의 실제가 체계 내적 작업이라면 메타 수학적 담론은 수학을 구성하고 있는 체계에 대해 어떠한 위계적 권 한을 행사할 수 없다. 요컨대 메타 수학의 메타 언어가 수학의 대상 언어 바깥에 위치하면 서 동시에 그 대상 언어에 내재적으로 관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연유로 힐버트의 무모순성 증명과 같은 메타 증명은 다른 모든 증명과 마찬가지로 증명일 뿐이고, 괴델의 불 완전성 정리는 다른 불가능성 증명과 마찬가지인 불가능성 증명의 귀결일 뿐이다. 나는 수 학 체계의 내적 자율성에 대한 비트겐슈타인의 이러한 입장을 내재적 실용주의라고 부르고 자 한다.

내재적 실용주의는 앞서 살펴본 분리주의와 연결주의, 그리고 반정초주의의 논리적 귀결이 다. 이를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수학은 다른 학문이나 담론과 분리되어 있다(분리주의). 수학을 형성하는 다양한 체계들의 규칙과 적형식은 체계 안에서 그에 연관되는 언어 게임들 과 서로 연결되어 있다(연결주의). 따라서 한 체계가 다른 체계의 토대가 될 수 없으며(반정 초주의), 체계 내에서의 계산, 증명, 규칙 따르기와 같은 인간의 실천적 언어사용에 의해 그 체계를 구성하는 적(適)형식들에 의미와 역할이 부여된다(내재적 실용주의).

이러한 관점에서 보자면 괴델의 정리는 비트겐슈타인에게 결코 놀라운 것이 못된다. 비트겐 슈타인에게 괴델 정리의 핵심은 어떠한 기호 체계도 그 자체 내재적으로 자기 스스로에게 적용되거나 의미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아무리 복잡한 체계라도 우리가 그것을 사용할 때 비로소 그 체계는 생명을 얻게 된다. 마찬가지로 수학적 진리, 수학적 명제, 증명과 같은 개 념에 제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다름 아닌 그 적용에 있다. ‘참이지만 증명될 수 없는 문 장’의 개념도 괴델의 정리라는 특정 문맥과 연관되어 있다. 괴델의 정리에 의해 ‘참이지 만 증명될 수 없는 문장’은 새로운 의미를 얻게 된다. 이로 말미암아 우리는 ‘참’, ‘증 명 가능성/불가능성’ 등의 개념을 새로운 방식으로 사용하게 되는 것이다. 비트겐슈타인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문장 ‘P는 증명 불가능하다’는 나중에는 상이한 의미를 갖는다.… 그것이 증명되기 이전과는”, “증명은 어떤 (특정한) 상황에 대한 당신의 파악을 인도한 다”, “증명의 과정에서 우리가 바라보는 방식은 변화한다.…우리가 바라보는 방식은 개조 된다.” 비트겐슈타인에 의하면 증명은 언어와 그 쓰임의 문법에 대한 분석과 명료화이다. 이러한 분석과 명료화 과정에 의해 그 이전에 무반성적으로 당연시되었던 가능성이 사실은 성립 불가능한 것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괴델 정리의 의의도 이러한 지평에서 찾아져야 하 고 따라서 거기에 더 이상의 새로운 철학적 함축은 없다는 것이다.

괴델의 정리에 관한 비트겐슈타인의 해석에 따르면 괴델의 정리로 말미암아 철학의 어떤 문제나 논쟁이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비트겐슈타인에 의하면 “어떠한 수학적 발견도 철학을 발전시킬 수 없다.” 이것이 수학에 힘입어 플라톤주의를 부활시키려는 수리철학자들이나 과학에 힘입어 철학의 자연화를 관철하려는 과학주의자들 모두에게 던지는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적’ 메시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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